_작가노트
나는 숲 속의 도 닦는 노인이었다. 한 손에 붓 하나 든 채로. 초록초록한 잎사귀를 보며 녹색녹색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꽤나 즐거운 수련이다. 알록달록하게도 그려보고 새콤달콤하게도 칠해보았다. 보기에 좋았다. 한때 이런저런 의미를 붙여보기도 했으나 결국 보기에 좋고 그게 전부인 작품이었다. 불만은 없다. 지난 세 번의 개인전은 이렇게 골방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수련의 결과물이었다. 찾아온 사람들은 좋아했다. 나도 좋았다.
숲 속에서만 살았던 것은 아니다. 가끔 하산해서 세상을 둘러보기도 했다. 처음 찾아간 곳은 우리나라의 가장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지옥이었다. 일제시대가 지난줄 알았건만 아직도 식민지가 버젓하게 존재했다. 거기서 세상 모든 부조리를 한꺼번에 체험하다가 체할뻔 했지만 결국 체하지는 않은 채, '쳇.. 이 나쁜놈들!' 하고 소심한 혼잣말만 삮히곤 했다. 내겐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는 숲 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체할 뻔 했던 순간마다 나만의 공간으로 되돌아왔다. 다시 아름다운 초록 잎사귀를 보며 도를 닦았다.
지옥은 남쪽 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숲 밖으로 시선을 돌릴 때마다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지옥이 보였다. 각각의 장소는 다르지만 지옥은 항상 같은 패턴으로 만들어졌다. 타겟이 정해지면 일단 누구도 볼 수 없게 벽을 세워 고립한다. 벽 안은 곧 식민지로 선포된다. 어떤 일이라도 용납되고 허용된다. 공인된 폭력. 심지어 살인까지도. 때문에 그들은 필사적으로 벽을 세운다. 벽을 세우는 것은 공권력만이 아니다. "보상금 더 타려고 떼쓰는 거 아녀?" 라고 혀를 끌끌 차며 말하는 이들의 아둔한 조롱도 저 굳건한 벽의 지분을 차지한다. 누군가 같은 달력을 쓴다고 같은 시대를 사는 것은 아니라고 했던가. 직접 찾아가거나 멀리서 망원경으로 보기 전까지는 나는 몰랐다. 2016년인데 식민지가 도처에 널려 있다.
벽 안에 고립되거나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을 봤다. 기꺼이 벽 안으로 들어가서 억울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심지어 그 곳으로 이주하여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봤다. 나는 바람이 세차게 불거나, 조금 춥거나, 배고플 때면 신속하게 안온한 내 숲 속으로 돌아와 따뜻한 밥을 차려먹었다. 이번 전시는 그들을 애도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준비했다. 아.. 그런데 애도란 무엇인가? 당하는 주체와 바라보는 대상을 분리했을 때에만 성립하는 무책임한 단어가 아닌가? 그래서 자기 만족일 뿐인 이 전시가 무슨 의미? 라고 물으면 할 말 없다. 나도 모르겠다. 다만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미세한 파동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겠다. 강정마을, 밀양, 세월호, 옥바라지 골목, 용산 등의 단어를 한 번이라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내가 가장 해 보고 싶었고 즐거워 할 수 있는 방식을 통해서.